대한민국 법적환상 관리청
SG-028 · REGRESSION AGENCY
Regression Age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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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01

단순 변심

하루를 반품해드립니다. 단, 반품된 어제가 어디로 배송되는지는 대리점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골목은 지도 앱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비가 오는 목요일 밤이면 사람들은 이상하게 그곳으로 걸어 들어왔다. 편의점 뒤편, 폐업한 사진관 옆, 수거되지 않은 종이상자가 늘 젖어 있는 담벼락 끝에 작은 간판 하나가 켜졌다.

어제 반품 대리점.

간판 아래에는 더 작은 문장이 붙어 있었다. 하루는 개봉 후 환불이 어렵습니다. 단, 미사용 후회에 한해 교환 가능합니다. 첫 출근을 한 서윤은 그 문장을 세 번 읽고도 뜻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점장 백도현은 회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비가 어깨에 닿지 않는 사람처럼 말끔했다. 그는 서윤에게 얇은 장부와 만년필을 건네며 말했다. “손님이 오면 이름부터 묻지 마세요. 이름은 보통 마지막에 밝혀집니다. 먼저 확인할 건 하나뿐입니다.”

“무엇을요?”

“반품 사유.”

Return Form

밤 아홉 시 십삼분, 첫 손님이 들어왔다. 남자는 축축한 검은 양복을 입고 있었고, 손에는 구겨진 부케 리본을 쥐고 있었다. 문턱을 넘자마자 그는 숨을 몰아쉬었다. 누군가에게 쫓겨 온 사람 같기도 했고, 자기 자신에게서 겨우 빠져나온 사람 같기도 했다.

“어제를 돌려받을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남자가 말했다. “아니, 돌려받는 게 아니라... 반품한다고 해야 하나요.”

도현은 대답 대신 카운터 아래에서 흰 신청서를 꺼냈다. 종이는 새것처럼 깨끗했지만, 맨 위에는 이미 남자의 손글씨가 적혀 있었다. 서윤은 그 글씨를 보고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남자는 아직 펜을 들지도 않았다.

품목
2026년 4월 27일, 결혼식 전날
신청자
성명 확인 보류
반품 사유
단순 변심 접수 대기
주의 사항
반품된 하루는 폐기되지 않으며, 타인의 아침으로 재배송될 수 있음

남자는 어제 결혼식장을 떠났다고 했다. 정확히는 결혼식 전날 밤, 하객 명단을 확인하다가 식장 뒷문으로 나갔다. 택시를 탔고, 휴대전화를 껐고, 새벽 기차역에서 아무 표나 샀다. 아침이 되자 모든 것이 너무 늦어 있었다.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남자는 리본을 접었다 폈다. “우리가 너무 오래 준비했어요. 부모님도, 회사 사람들도, 친구들도 다 알고 있었고요. 그런데 막상 내일이라고 생각하니까, 내가 정말 선택한 건지 아니면 여기까지 밀려온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젖은 양복 소매에서 빗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도망친 뒤에야 알았습니다. 내가 그 사람을 망설이게 만든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망설임까지 내가 대신 망쳐버렸다는 걸요. 그래도... 그 순간만 없던 일로 할 수 있다면 다시 말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미안하다고. 도망치지 않겠다고.”

서윤은 신청서의 사유란을 보았다. 단순 변심. 남자의 말은 길었지만, 종이는 그 모든 사정을 네 글자로 접어 넣고 있었다.

도현은 남자에게 작은 영수증을 밀어주었다. “어제로 돌아가시면 같은 선택지를 다시 받게 됩니다. 다만 이번에는 바꾸실 수 있죠.”

“그러면 다 괜찮아집니까?”

“괜찮아지는 쪽으로 배송될 뿐입니다.”

Returned Yesterday

남자는 영수증을 쥐자마자 사라졌다. 갑자기 증발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대리점 안의 모든 시계가 일제히 뒤로 돌았고, 유리문 밖의 비가 위로 올라갔고, 남자가 서 있던 자리에는 젖은 발자국만 남았다.

서윤은 숨을 참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성공한 건가요?”

“아직요.” 도현이 말했다. “반품은 언제나 배송 확인이 끝나야 완료됩니다.”

카운터 뒤 작은 모니터가 켜졌다. 화면에는 결혼식장 대기실이 보였다. 남자는 어제 밤으로 돌아가 있었다. 이번에는 뒷문 앞에서 멈췄다. 문손잡이를 잡은 채 오래 서 있다가, 신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일 식장에 갈게.” 화면 속 남자가 말했다. “미안해. 무서웠어. 그런데 도망치고 싶었던 건 너한테서가 아니었어.”

서윤은 안도하려 했다. 그러나 화면은 곧 다른 곳으로 바뀌었다. 신부가 혼자 앉아 있는 새벽의 방이었다. 그녀는 전화를 끊은 뒤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책상 서랍에서 작은 봉투를 꺼냈다.

봉투에는 편지가 들어 있었다. 원래의 어제라면, 그녀는 그 편지를 들고 식장으로 갔을 것이다. 남자가 도망친 뒤, 아무도 그녀에게 계속하라고 말하지 못했을 때, 그녀는 편지를 읽고 결혼식을 취소했을 것이다. 그것은 버림받은 사람의 분노가 아니라, 오래 미뤄둔 자신의 대답이었다.

하지만 이제 남자는 도망치지 않았다. 그는 돌아왔다. 사과했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의 대답은 갈 곳을 잃었다. 한 사람이 자기 후회를 회수하자, 다른 사람의 확신이 빈자리로 끌려 들어갔다.

화면 속 신부는 편지를 찢지 못하고 서랍 깊숙이 넣었다.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랐지만, 눈빛은 누군가의 하루를 잘못 배송받은 사람처럼 흐렸다.

배송 확인서

처리 상태: 접수 완료
반품 사유: 단순 변심
배송 메모: 신청자의 후회는 회수되었으나, 수취인의 확신 일부가 대체 품목으로 사용됨.

서윤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럼 저 사람은 행복해지나요?”

“아마도요.”

“신부는요?”

도현은 장부를 닫았다. “그건 우리 쪽 상품이 아닙니다.”

그 말이 끝나자, 대리점 문에 걸린 작은 종이 울렸다. 손님이 나간 것도 아닌데 바닥에는 새 영수증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서윤은 그것을 주워 들었다. 영수증 뒷면에는 인쇄된 글자가 아닌, 누군가 손톱으로 긁은 듯한 문장이 남아 있었다.

정말 단순한 변심이었을까?

그 아래에는 아주 희미한 붉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 서윤은 눈을 가늘게 떴다. 도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환불 불가.

Final Input

신청서를 정산하려면 반품 사유를 입력해야 합니다. 대리점이 남긴 단어를 떠올려 보세요.

신청서의 사유란 손님의 변명 영수증 뒷면의 도장